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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배구스타' 장윤창 교수를 만나다현재 경기대학교 체육학과 교수로 캠퍼스에서 후학양성에 힘쓰며 스포츠스타들과 '함사모' 봉사활동으로 보람느껴
이주옥 기자 | 승인 2020.06.15 16:58
  경기대학교 집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장윤창 교수  
경기대학교 집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장윤창 교수

1980년대 한국 남자배구선수로 맹활약하며 부동의 존재감을 자랑하던 스타가 있었다. 그가 197cm 키 만큼 높이 뜬 배구공을 향해 허리를 젖히며 날아오르던 모습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팬들이 많을 것이다. 일명 ‘스카이서브’ 창시자인 장윤창 선수. 전성기 시절, 고려증권을 명실공이 배구 강팀으로 자리매김 시킨 주인공이다. 현재 그는 경기대학교 체육학과 교수로 캠퍼스에서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다. 잠시 5-60대 중년들을 끌고 그 시절 환호와 열광의 시간 속으로 걸어가 본다. 

Q. 배구는 언제부터 시작했는가?
 - 초등학교 때 육상에 재능을 보였다. 선생님으로부터 축구선수로 뛸 것을 권유 받았으나 당시의 혹독한 훈련에 따른 부정적 이미지로 인하여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혔다. 본격적인 배구는 1973년 중학교 때부터 시작했다. 그 후 고교1학년 때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었으니 남들보다 빠른 성장이었다.
 
Q. 선수시절, 장윤창은 ‘성실’과 ‘의리’의 아이콘이었다. 그 부분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은?
 - 예나 지금이나 운동선수에게 ‘도’나 ‘예’는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즉 철저한 스포츠맨쉽의 발현이었다
 
Q. 의리로 일관 된 선수생활이 때론 개인적인 진로나 성취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 부분을 돌이켜보면 아쉽거나 후회되지는 않는가?
  - 물론 더 풍요로운 삶을 위해 놓친 부분이 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노래 한 소절이 생각난다. 바로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다. 하지만 그런 물질이나 명예는 한낱 부질없는 것이다.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Q. 아들이 농구선수 장민국이다. 아들이 배구가 아닌, 농구를 선택한 것에 아버지로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 아니다. 아들이 초등학교 때 죠지워싱턴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스포츠에 자유로운 나라이고 그러다보니 아들에게 다양한 스포츠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결코 강요하거나 종용하지 않은 순수한 본인의 선택이다.
 
  장윤창 교수가 배구공과 함께 하고 있다.  
장윤창 교수가 배구공과 함께 하고 있다.

Q. 아들 트레이드문제로 인해 한 때 장윤창 교수가 언론에 주목을 받았던 사건이 있다. 그 날의 진실과 속 시원한 소명을 한다면?

- 당시 아들은 KCC소속 선수였다. 피로골절 수술을 받고 1년의 공백이 있었다. 당시 아들은 54경기를 전부 뛴 선수였고 트레이드 대상으로 지목됐다. 당시 군 문제를 앞두고 있던 아들에게 상무대 입대는 가장 절실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아들에게 주전으로 뛸 기회는 줄어들었다. 경기 실적이 있어야만 가능한 상무대 입대에 치명적인 장애였다. 그런 상황에 구단의 부실한 경영과 이중성으로 트레이드 문제에 제동이 걸렸다. 그날 있었던 약간의 일탈행위는 자식의 장래가 걸린 부당한 처사에 아버지로서의 부성애의 표현이었을 뿐만 아니라 프로스포츠계에 고착화 된 선수 인권박탈에 대한 선배로서의 성토였다.
 
Q. 교육자로서 뿐만 아니라 봉사하는 삶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봉사단체 ’함께 사는 사람들‘ 즉 ’함사모‘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한다.
- 20년 동안 이어져오고 있는 봉사활동이다. 우리나라 60개 스포츠종목의 기라성 같은 3만 여명의 멤버와 1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주로 장애시설, 고아원, 양로원, 독거노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특히 현장에서 직접 만들어 대접하는 ’자장면 봉사‘는 유명하다. 그 밖에 서해안 기름때 제거 봉사나 독거노인들을 위한 연탄 나눔 봉사가 있다. 팬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돌려준다는 데 의미가 있으며 그런 만큼 보람도 크다.
 
Q. 현재 지도자의 길이 아닌,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다. 거기에 대한 아쉬움 없는가?
- 은퇴 후 고려증권 팀에서 8년 간 코치생활을 했다. 그때 충분히 지도자로서 능력발휘를 했다. 지금 강단에서 후학을 지도하고 있는 것에 만족스럽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스포츠는 살아있다‘는 예나 지금이나 부동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문제 청소년이라도 스포츠를 통한 교화만큼 확실한 것이 없다. 각본 없는 드라마를 연출한다는 것도 우리네 인생사와 닮았다. 희생하고 노력하고 배려하는 것이 선수의 생명이니만큼 스포츠를 통해 인성을 배워야한다. 앞으로 스포츠를 통한 개인 이기주의 타파와 올바른 인성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이주옥 기자  leejo9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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